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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AI 기술인재 해외 유출 심각...투자·인재 유인책 마련해야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

2024-04-22     전국매일신문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주요국들이 반도체·AI 산업 육성을 위해 사활을 건 투자·인재 유치전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국내 인공지능(AI) 기술 인재들의 해외 유출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정부는 15일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는 삼성전자에 보조금 64억 달러(약 8조 9000억 원)를 지급한다고 발표했다. 인텔(85억 달러), TSMC(66억 달러)에 이어 셋째로 많다. 삼성전자가 당초의 ‘170억 달러 투자’ 계획보다 규모를 2배 이상 늘려 ‘10년간 400억 달러(약 55조 원) 이상 투자’를 결정한 데 대한 보상이다. 삼성전자는 차세대 최첨단 메모리 반도체인 2나노급도 미국 공장에서 생산키로 했다. 삼성전자의 400억 달러 투자로 시골 농촌이었던 테일러시는 2만여 개의 일자리를 새로 창출하면서 글로벌 반도체 생산지로 변모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으로선 K반도체의 주력 생산기지가 미국으로 넘어갈 가능성을 걱정해야 할 상황에 이르렀다. 2021년 4월 바이든 대통령이 ‘반도체 자립주의’를 선언한 지 3년 만에 미국은 설계부터 생산, 첨단 패키징까지 모든 공정을 미국 내에서 완결하는 반도체 생태계 조성의 큰 그림을 마무리 지었다. 2022년 반도체 지원법을 제정하고 보조금 73조 원(527억 달러)을 유인책으로 제시해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로부터 총 487조 원의 투자를 유치한 데 이어서 대만 TSMC 등 해외 생산·조립 업체를 끌어들이면서 자국 내에 차세대 AI 반도체 생태계를 완성했다. 2030년까지 첨단 반도체의 20%를 미국 안에서 생산하겠다던 공언이 착착 실행에 옮겨지고 있다.

미국만 뛰는 게 아니다. 중국과 일본도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지난 3년간 미·중은 ‘1000일 전쟁’으로 불릴 만큼 치열한 반도체 주도권 경쟁을 펼쳤다. 미국의 첨단 반도체 규제에 맞서 중국은 886조 원의 민관 기금을 마련하고 세계 시장의 70%를 차지하는 범용 반도체로 눈을 돌려 시장 장악력을 높이고 있다. 2022년 이후 올해 말까지 미국에서 착공하는 반도체 공장이 25곳인데, 같은 기간 중국이 자국에 짓는 반도체 공장이 20곳에 달한다. 일본도 반도체 산업을 회생시키려 대만 TSMC와 손잡고 생산 시설 확충을 위한 속도전을 펼치고 있다. 일본 정부·지자체·의회의 적극적 지원 덕분에 TSMC의 구마모토 1공장은 당초 계획보다 2년이나 앞당겨 불과 2년 만에 완공됐다. 일본 정부는 TSMC 구마모토 1공장 건설에 4,760억 엔(약 4조 2,400억 원)을 지원했고, 2공장 건설에도 최대 7,320억 엔의 보조금을 지급할 예정이다. 이렇듯 반도체 지각 변동의 중대한 시기에 주요국이 세금을 쏟아부으며 반도체 산업 유치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지만 한국은 ‘대기업 특혜’라는 반(反)기업 정서 프레임에 막혀 보조금을 지급하지 못하고 있다. 2043년까지 총 622조 원이 투자되는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프로젝트를 시작했지만 정부의 현금성 지원은 기업 투자액의 15%를 세액 공제해주는 것이 전부이고, 그나마 올 연말로 시효가 끝난다. 

무엇보다도 더욱 뜨겁게 달아오른 것은 AI 산업 경쟁력의 근간인 인재 쟁탈전이다. 글로벌 첨단 기업의 인재 유치전이 치열해지면서 보다 나은 연구 환경을 좇아 미국 등 해외로 떠나는 인재가 많기 때문이다. 인재 확보는 AI 산업 경쟁력의 근간이라는 점에서 정부와 기업의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 구글·메타 등 빅테크들은 AI에 자원을 집중하기 위해 다른 부문의 인력을 대량 감원할 정도다. 반면 한국은 최악의 AI 인재 유출국으로 전락할 처지에 놓였다. 미국 스탠퍼드대 ‘인간 중심 AI연구소(HAI)’가 지난 4월 15일(현지 시각) 발간한 ‘AI 인덱스 2024’에 따르면 한국은 2022년 기준 인구 10만명당 AI 특허수가 10.26개로 조사 대상국 1위였다. 한국에 이어 룩셈부르크(8.73개), 미국(4.23개), 일본(2.53개), 중국(2.51개)이 전 세계에서 AI 특허 상위권 국가로 꼽혔다. 또 한국의 10.26개의 특허수는 10년 전 대비 38배 증가한 수치다.

글로벌 비즈니스 인맥사이트인 링크드인를 기반으로 조사한 ‘AI 인재 집중도’는 1위가 이스라엘이 1.13%, 2위는 싱가포르(0.88%)였으며 한국이 3위(0.79%)로 최상위권이었다. 이어 룩셈부르크(0.74%), 핀란드(0.71%)가 톱 5에 들었다. 다만 링크드인 기준 1만명당 ‘AI 인재 이동’에서 한국의 경우 ‘-0.3’을 기록했다. 이는 AI 인재가 한국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해외로 빠져나갔다는 의미다. 2020년에는 0.3이었던 이 지표는 2021년과 2022년 낮아졌고 지난해에는 큰 폭의 마이너스(-)를 나타냈다. 인재 이동 지표는 룩셈부르크(3.67)와 아랍에미리트(1.48) 순으로 높고, 인도(-0.76)와 이스라엘(-0.57)은 한국보다 유출이 심했고, 미국은 0.40이었다. 엔지니어를 과소평가하는 사회적 정서에다 경쟁국 대비 열악한 처우 등으로 우수 인재들이 미국·중국 등으로 빠져나간 것이다. 인재들이 떠나면 관련 산업의 노하우와 기술이 유출돼 우리 산업의 경쟁력 훼손이 불가피하다. AI 기술은 더 이상 반도체와 게임·자율주행차 등 일부 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금융과 쇼핑·농업·의료·전력 등 전방위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그만큼 AI 인재 유출에 따른 산업계의 잠재적 손실은 막대하다. AI 인재 유출을 막기 위한 특단의 투자와 인재 유인책이 필요한 이유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지난 3월 7일 발표한 ‘초격차 산업경쟁력 확보를 위한 글로벌 기술 협력 촉진 방안’ 보고서는 향후 5년간(2023년~2027년) 국내 AI 분야에서 인력 1만 2,800명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고급 인력 부족 현상이 심각하다. 보고서에 따르면 초·중급 인력은 3,800명 초과 공급되지만, 고급 인력은 1만 6,600명이나 모자랄 것으로 예상된다. AI 연구에 필수인 빅데이터 분야에서도 같은 현상이 일어나 초·중급 인력이 4,300명 초과 공급되는 반면, 고급 인력은 2만 3,900명 부족할 전망이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정부와 기업이 나서서 해외 인재 유치 등 다양한 수단을 강구해야만 한다. 주요국이 글로벌 협력에 집중하는 만큼 우리나라도 국내 폐쇄형 방식에서 벗어나 글로벌 기술협력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기술협력 촉진 방안으로는 ▷국내 협력 거점 구축(Platform) ▷기술협력 친화적 제도 운영(Policy) ▷협력 대상국 전략적 선정(Partnership) 등 ‘3P 전략’을 제시했다. 글로벌 기술협력이 최적의 해법이라고 판단되는 분야만큼은 규제를 과감히 개선하고 협력 생태계를 조성함으로써, 우리나라가 기술협력의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고 초격차 기술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전략산업 기술 경쟁에서 우리 기업들이 살아남으려면 정부와 정치권이 특단의 투자·인재 유인책을 마련해야 한다. ‘강 건너 불구경’식으로 안일하게 대처하다가는 ‘기술 초격차’의 선도자가 되기는커녕 오히려 ‘후발 추격자’로 전락할 수 있다. 속도전이 중요한 미래 산업이 규제에 발목 잡혀 투자 시기를 놓치지 않도록 획기적인 규제 혁파도 긴요하다. 정부는 반도체 등 첨단산업에 대해 파격적인 세제 지원과 원스톱 서비스 강화를 서두르는 한편 경쟁국처럼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해야만 할 것이다. 이공계 인재의 처우 개선을 위해 민관 공동으로 AI 기금을 조성해 연구 환경을 개선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전국매일신문 칼럼]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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