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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214] 이성계 ‘황산대첩’과 대한민국이 쏘아올린 화살

서길원 大記者

2024-08-07     서길원 大記者

전 세계 정치인들이 참가하여 최악의 선수들을 뽑는 ‘워스트 정치 올림픽’이라도 열린다면 대한민국이 이 또한 단연 우승하지 않을까

‘1380년 고려 우왕 6년, 삼도 도원수 이성계가 전라북도 남원의 운봉마을 앞 황산(荒山)벌에서 왜구를 맞아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도원수 휘하의 고려군은 2000명에 불과했지만 왜적은 그보다 10배나 많은 2만여 명에 달했다.

전투는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았고, 급기야 해가 기울고 날이 어두워졌다. 칼로 베이고 베는 것이 일상이었던 왜군들에게 유리하기 그지없는 근접전의 상황이 전개됐다. 반면 활이 주특기인 고려의 병사들에게 어둠은 그야말로 눈 뜨고 코 베일만큼이나 불리한 형국이 될 수밖에 없는 위기가 닥쳤다.

도원수 이성계가 하늘을 우러러 기도를 올렸다. ‘달을 뜨게 해 달라’는 간절함이었다. 달이 떠올라야 적이 보이고, 보이는 적을 화살로 쏘아 무찌를 수 있기 때문이다.
도원수의 간절한 기도가 하늘에 닿았다. 기도에 응답하듯 보름달이 떠올라 전장을 훤히 비추고 비로소 적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왜장 아지발도는 갑주, 목가리개, 면갑 등으로 머리를 둘러싸고 있어 활을 쏠 틈이 없었다.

도원수가 장수 퉁두란에게 화살로 아지발도의 투구를 맞추라고 명했다. 퉁두란이 왜장의 투구를 쏘아 맞추자 왜장은 투구 끈이 벗겨지는 것을 막으려고 입을 벌였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도원수의 활을 떠난 화살이 아지발도의 벌어진 입을 꿰뚫었다.
왜구는 섬멸됐고 핏자국은 바위에 남았다. 인월(引月)이라는 지명은 ‘달을 뜨게 해달라’는 이성계의 기도에서 유래했다.

‘남원시지’에는 이성계의 황산대첩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이성계가 말을 달려 투구를 정통으로 맞히니 아지발도의 투구가 땅에 떨어지고 이때 퉁두란이 왜장을 쏘아 죽인 걸로, ‘태조실록’과는 조금 다르게 기술됐다. 하지만 이성계의 신궁에 가까운 화살 솜씨를 그려내는 것은 남원시지나 태조실록이나 다르지 않다.

이 전투로 이성계의 신화가 창출되기 시작하고, 황산대첩 12년 뒤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하고 왕이 된다. 황산대첩이 끝나고 644년이 지난 2024년, 대한민국이 쏘아 올린 화살이 전 세계인을 또 한 번 놀라게 했다.
프랑스 파리의 앵발리드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에서 한국 양궁이 사상 최초로 올림픽 5종목을 모두 석권하며 새로운 역사를 썼다.

여자 단체전과 남자 단체전, 혼성 단체전, 여자 개인전, 남자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싹쓸이하는 세계 최강의 신화를 창조한 것이다.
올림픽에서 양궁을 취재하는 한 일본 기자는 "역사적으로 볼 때 고조선, 조선 때부터 한국이 활을 잘 쐈다는 기록도 있다"며 '유전자'가 특별한 것이 아닌지 궁금해 했다고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중국인들이 ‘동이(東夷)민족’이라며 두려워할 만큼 활 잘 쏘기로 유명한 우리 민족의 DNA가 발현됐다고 볼 수 있다.

고구려를 세운 주몽, 즉 동명왕(東明王)은 일곱 살 때 활과 화살을 만들어 백번 쏘면 백번 모두 적중한 만큼 신궁이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고구려의 주몽에서 고려의 이성계로 상징되는 ‘동이(東夷)민족’의 유전자가 오늘까지 면면히 흐르고 여기에 태극 궁사들과 대한양궁협회의 노력이 더해져 이뤄낸 결과다.

이번 파리 올림픽 양궁에서 한국 지도자의 지도를 받은 나라는 12개국이나 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한국의 벽을 뛰어넘지 못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양궁뿐만 아니라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선수들은 펜싱과 사격, 배드민턴 등에서 세계 정상의 실력을 보여줬다.

이들의 선전으로 국민들은 사상 최악이라는 폭염을 이겨내며 내일을 향한 힘찬 발걸음을 계속하고 있다. 태극전사들이 파리 올림픽에서 선전하며 국위를 선양하는 동안에도 국내 정치권은 특별법과 거부권을 창과 방패처럼 치켜들고 폭염보다 더한 짜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럴 때 드는 생각이 있다. 상상만으로도 국민들은 얼굴이 화끈거리는데 저들은 전혀 부끄럽지 않은 것이 또 부끄럽다. 그래도 태극전사들이 있어 행복한 시간이었다.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大記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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