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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숲길을 걸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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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숲길을 걸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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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4.06.2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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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연 시인·수필가

숲의 색깔은 생명(生命)의 색이다. 발 없이 외다리로 서서 일생(一生)을 살아가는 나무들이 만들어 낸 함초롬한 이 길, 해도 걷고 나도 걷는 이 길, 고단한 운명(運命)이 피워낸 이파리들이기에 더 짙푸르고 눈부시다고 하겠다.

대지가 갈라지고 바짝 마른 그 폐허 위에 최소한의 숨으로 견디는 나무를 보았다. 자신의 몸을 말고 가장 아픈 곳에 간신히 매달린 이파리를 묵묵히 떨어뜨리는 아픔도 보았다. 이슬마저도 힘겨운 듯 가쁜 숨을 쉬는 그들에게 맑은 하늘은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그 맑음이 지속되는 동안 푸른색을 잃어가며 저항(抵抗)하는 몸짓으로 어떻게든 오늘을 견디는 가련(可憐)한 나무도 보았다. 꼭 우리네 서민(庶民)들의 삶과도 같았다.

낡은 옷이 찢어지거나 구멍이 생기면 비슷한 헝겊을 덧대어 그 구멍을 깁고 또 기워 입고 다니던 시절이 우리에겐 있었다. 그 시절을 견디기 위해 우리의 할머니가, 우리의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전깃불에서 수돗물 한 방울까지도 아껴야 살 수 있던 시절이 있었다. 나무에게 가뭄은 아마도 그런 시절(時節)이었을 것이다.

외다리로 하늘을 이고 살아가는 나무가 피워낸 초록을 보면 미안하고 고맙다. 인간에게 양질의 그늘과 휴식 공간을 제공하고 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내뿜어 맑은 공기를 주고 또 관상용으로, 글감으로 인간에게 무한한 사랑을 베풀기만 하는 나무,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그들의 사랑을 너무나 쉽게 잊어버린다. 인간에게 망각이란 하나님의 선물과도 같지만 좋은 것마저 잊어버리는 안타까움이 있다.

인간(人間)은 살아있는 나무들의 지극한 사랑을 받고 사는 것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나무는 세상(世上) 사람들을 위해 맥(脈)을 짚고 귀를 기울이고 있을 것이 분명(分明)하다.

지구촌에서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수많은 숲이 사라졌고 지금도 사라지고 있다. 나무의 죽음은 또 다른 생명을 빼앗고 후손들에게 아름답게 물려줘야 할 지구는 사막화와 온난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앓고 있는 지구는 가벼운 몸살이 아니다. 우리는 그렇게 머지않은 미래에 모든 것을 잃을지도 모른다.

나는 살아 있다. 분명 살아 있어서 나무의 무한한 사랑을 받으며 숲길을 걷고 있다. 내 두 발이 얼마나 고마운지 느끼게 된다. 굳이 사막에 가지 않더라도 나무와 숲이 주는 풍요로움과 여유로움을 알 수 있다. 모진 풍상을 감내하며 오랜 세월을 살아가는, 백설(白雪)이 만건곤(滿乾坤)할 때 독야청청(獨也靑靑)하는 소나무의 생명력은 우리에게 끈기를 가르쳐 주기도 한다.

불편한 현실을 견디며 몸으로 빚어낸 저들의 녹음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에서 그리던 뒤죽박죽된 수많은 생각이 정리되지 않는가. 저 짙푸른 이파리들이 나를 숲길로 다시 불러들일 것이고 다음에는 좀 더 진한 고마움으로 그들과 동행할 것이다.

다만 지금은 저 나무들처럼 침묵(沈默)해야 할 때, 온몸으로 내뿜는 나무의 사랑을 아낌없이 받아야 할 때, 천천히 그리고 아주 천천히.

[전국매일신문 칼럼] 김병연 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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