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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어용’학자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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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어용’학자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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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4.06.2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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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 언론인·슬기나무언어원 원장

한겨레의 시점(POV) 착란, 독자는 뭘 배우지?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의 輿(여)는 ‘세상을 실은 수레’다. 해 뜨는 큰 동녘 우리나라를, 수레에 싣는 것처럼 그린 지도다. 바퀴 모양도 들어있는 의 車 글자를 눈여겨보자. 

어용(御用)의 御는 그런 수레(輿)를 몬다, 구동(驅動)한다는 뜻에서 번져 나와 ‘(황제가) 세상을 다스린다.’로 의미가 무지 커졌다. 

車(차 또는 거)나 御(어)는 3천 년쯤 전의 갑골문(甲骨文)에도 나온다. 그 (상형)문자들은 사물과 현상의 모양과 뜻을 포개서 품은 것이니, 그 이합집산(離合集散)과 변천(變遷)에서 오래 사람들의 생각(마음)이 담겼다. 언어가 가진 철리(哲理)로 여겨야 할 대목이다. 

요즘은 인터넷 한자사전을 통해 어렵지 않게 그런 한자의 뜻을 상상할 수 있는 갑골문 금문(金文)등 어원(語源)을 찾아볼 수 있다. 

한겨레신문의 한 기사에서 어용(御用)이란 말을 보고 문득 輿와 御를 떠올렸다. 일제(日帝) 때 침략자들이 도굴하듯 파헤친 1천5백 년 전의 대가야 왕릉을 제대로 발굴한다는 의미 큰 내용의 기사(6월 12일자)였다. 한 대목 인용한다. 

[...‘환두대도’라고 일컫는 가야의 보물 칼을 발견한 건 일제의 어용 고고학자들이다. 1939년 조선총독부 명령을 받고 고령군 지산동 대가야고분군에 조사원으로 급파된 아리미쓰 교이치와 사이토 다다시였다. 그들은 산 능선에 흩어진 고분들 가운데...]

이름으로 미루어 조사원들은 일본인 관계자로 여겨진다. ‘어용 고고학자’라고 한 대목과 조선총독부의 명령을 받았다는 대목을 주목하자. 

일제 식민지 당시의 御用 고고학자라면, 자기네 왜의 왕립(王立), 영어식으론 로열(royal) 학자였다. 왜(倭)는 지 임금을 천황(天皇)이라 했으니 황실이 세운 (또는 인정한) 학자들이다. 조선총독부 명령 따위에 움직일 ‘신분’이 아닌, ‘대단한 학자들’이었을 것이다. 

이런 설명은 저 기사의 뜻이나 분위기와 어긋난다. 왜 그럴까. 기사를 쓴 노형석 기자는 아마 우리 국어사전 표제어 ‘어용(御用)’의 두 번째 풀이만을 염두에 둔 것 같다. ‘권력에 영합해 줏대 없이 행동하는 짓거리나 그런 사람’ 말이다. 원래 뜻이라 할 첫째는 ‘임금이 쓰는 바’다. 

그 조사원들이 한국인이었다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겠다. 시점(視點)의 혼돈으로 본다.

사물과 현상을 보는 관점, 젊은이들 유행어로 POV(point of view)에 착란이 생긴 것인가. 아니면 요즘 급 부상(浮上) 중이라는 ‘토착 왜구’들의 속셈 흠모하는 뜻의 반영이던지. 설마.

왜의 천황이 보냈거나 조선총독부의 명령을 받고 발굴(發掘)에 나선 왜국(倭國) 학자들의 입장에서 ‘御用’은, 우리가 ‘어용학자’나 ‘어용기자’라고 경멸의 뜻으로 쓰는 말과는 천지 차이다. 왜인들에게 저 칭호는 (저 기사가 사실이었다면) 가문의 영광이었으리라. 

같은 주제를 다룬 다른 신문 방송의 기사에는 ‘어용’이란 말이 (필자가 살핀 한에서는) 없다. 보도자료를 낸 조직이 그런 말을 쓰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그 신문의 ‘긁어 부스럼’이었을까? 왜 그런 말을 굳이 썼을까? 글은, 일점일획(一點一劃)에 뜻 없는 건 없다.   

둥근 고리(環頭 환두) 안에 불 뿜는 용(龍)이 정교하게 조각된 큰 칼이다. 끔찍하게 아름다운 저 큰 보물이 선보였던 일제 때의 ‘큰 사건’이었다. 사진을 보면서 몸소 보고 싶다는 열망이 일었다. 곧 그 때가 오리라. 

우주의 종횡(縱橫), 영원(시간)과 가없는 공간을 함께 바라보는 것이 ‘기자’의 바른 시점이다. 

[전국매일신문 칼럼] 강상헌 언론인·슬기나무언어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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