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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베토벤의 ‘미녀 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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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베토벤의 ‘미녀 수집’
  • 전국매일신문
  • 승인 2024.06.11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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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 언론인·슬기나무언어원 원장

진행자의 불안정한 ‘아에이오우’ 발음, 우스개일까? 

KBS 라디오의 고전음악 방송 클래식FM(에프엠), 요즘 ‘말이 많아졌다.’고들 하지만 진행자의 저 고운 음색은 이런저런 불평을 다 덮는 모양인가, 자질구레 신소리까지 자못 굳세고 길다. 팬이 많다 자랑하는 그 ‘말’들과 주변의 뜻은 부담스럽기도 하다. 

며칠 전 그 대목은 잊히지 않는다. 방송에서 그는 ‘한참 웃었네요.’하며 심지어 즐거운 기색으로 얘기했지만, 우스개로 지나칠 일이었을까. 

한국어의 담장 한 모퉁이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무너져 내리는 낌새는 아닌지. 그 진행자가 실시간 인터넷 소통 공간의 댓글을 소개한 것이다. 

운전 중이라 귀담아 들었던 게 아니어서 취지(趣旨)와 개요로 설명한다. 매일 오후 방송하는 ‘노래의 날개 위에’라는 프로그램이었다. 

<‘베토벤이 미녀를 수집했다.’고 진행자가 말한 것으로 들었다. 듣고 보니 황당했다. 설마...> 시청자가 올렸다는 글의 내용이다. 웃을만한 일이긴 했다. 또는 놀랄만한 일이었다. 베토벤이 아름다운(美) 여자(女)를 수집(蒐集)했다니.   

‘민요(民謠)’를 말한 것이었다. 베토벤이 수집(해 편곡)했다는 그 민요, 처음 듣는 곡인데 재미있고 (여느 베토벤 음악과는 다른) 특별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진행자의 음악 소개를 ‘미녀(美女)를 수집했다.’고 들었다는 그 댓글, 웃었지만, 웃고 나서는 다시 생각해야 할 걱정스런 얘기였다. 왜 ‘민요’가 ‘미녀’로 들렸을까? 

소릿값이 [미뇨]보다는 [미녀]에 가까웠겠다는 추측이 가능할까? KBS의 아나운서라는 진행자는 자신의 이름을 홍수연이라고 소개했다. 아나운서인데, 발음이 그럴까? 내 귀의 잘못인가?

베토벤의 그 민요 음악이 궁금해 프로그램 홈피를 찾았는데, 며칠 지나서인지 곡목(曲目) 등은 찾을 수 없었다. 대신 필자가 [홍수연]이라고 들었던 그 진행자가 홍소연이란 이름의 여성임을 알게 됐다. 아름다운 용모의 사진도 걸려 있었다. 아하, 그래서 그랬겠구나.

‘미녀와 민요’ 해프닝, 그 개연성(蓋然性) 또는 가능성을 추측할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 아닌가. 아마 그는 [홍소연]이라고 자기 이름을 발화(發話)했을 터이나, (필자 같은) 어떤 이들의 귀에는 [홍수연]으로 들렸을 수도 있었(겠)다는 짐작이다.  

요즘 ‘그렇지 않나요?’를 ‘그렇지 않나여?’라 하며 또 무심코 쓰기도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겠다. 방송 출연자들, 특히 ‘날씨요정’처럼 고운 외모로 눈길 붙잡는 이들 중에 ‘아에이오우’로 상징되는 우리말 모음(母音)의 소릿값 즉 음가(音價)가 (매우) 불안정한 이들이 여럿이다.  

‘홍수연 홍소연’ 주제도 ‘미녀 민요’ 해프닝처럼 그 하나일 터. 이름자(字)를 또박또박 말하지 않고 매끄럽게(이쁘게)만 소리 내다 빚는 상황일 것이다. 제 이름 귀하게 여기는 태도일까.

아나운서 등 특히 ‘말(소리)’로 세상에 기여하는 이들은 지금 바로 자신의 ‘아에이오우’ 즉 모음들의 발음을 입 모양과 함께 몸소 거울 보며 점검할 일이다. 좋은 사례로 CNN이나 BBC 같은 외국 방송의 진행자들 발화(發話)와 입모습도 살펴야 한다. 

바른 입모양을 갖추지 않고도 (모든) 소리를 다 발음하는 우리 아나운서들의 유능함(?) 또는 이런 ‘기적’, 보다 심각히 톺아내 따져야 한다. 음가 따지면 엉터리 발음이 속출할 것이다.

유명인으로 (시민의 언어생활에도) 영향이 큰 정치인이나 연예인도 한가지다. 하다하다 악성(樂聖) 베토벤에게 ‘미녀’ 수집을 다 시키다니. 사소한 일일까. 

‘쌀알 한 톨에서 우주를 본다.’던 선각자의 지혜를 생각할 것. 언중유골(言中有骨)의 뜻도. 

[전국매일신문 칼럼] 강상헌 언론인·슬기나무언어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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