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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필의 돋보기] 사후약방문식 대처, 국민 안전 지킬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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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필의 돋보기] 사후약방문식 대처, 국민 안전 지킬 수 없어
  • 최승필 지방부국장
  • 승인 2024.08.25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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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필 지방부국장

조선(朝鮮) 인조(仁組) 때 학자 홍만종(洪萬宗)의 순오지(旬五志)에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라는 말이 나온다.

‘사람이 죽은 후에 아무리 좋은 약을 써도 소용이 없다’는 말로, 굿이 끝난 뒤에 장구를 치는 것은 모든 일이 끝난 뒤에 쓸데없는 짓을 하는 것과 같고, 말을 잃어버린 후에는 마구간을 고쳐도 소용없다는 뜻이다.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근본적(根本的)인 대책을 세울 줄 아는 현명(賢明)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교훈(敎訓)이다.

지난 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전기 자동차 화재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차량 140여 대가 전소되거나 그을렸고, 단지 수도 공급시설이 파손돼 주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또, 지난 6일 충남 금산군 한 주차타워에서도 주차한 전기차에 화재가 발생하는 등 전국 곳곳에서 전기차 배터리 관련 화재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국토교통부와 소방청 등에 따르면 전기차 화재 건수는 2022년에는 43건, 지난해에는 72건으로 치솟았다. 올 상반기 기준 등록된 전기차는 60만6610대로, 2017년 2만5108대에 비해 무려 24배나 급증했다.

온실가스와 미세먼지 등 대기오염물질을 줄이기 위해 정부와 지자체가 보조금을 지원하는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전기차 화재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시민들의 불안이 더욱 커지고 있다.

이처럼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터지게 되면 여야는 부랴부랴 관련 법안 발의에 나서고 있으나 ‘뒷북 입법’이라는 고질적인 문제가 매번 드러나고 있다.

전기차는 화재 발생 시 배터리 온도가 급상승하는 이른바 ‘열 폭주 현상’이 발생, 이동식 소화수조 등 특수 시설의 필요성과 소방시설 설치 의무화 요구가 꾸준히 제기됐으나 지난 21대 국회 때 발의된 관련 법안들은 논의조차 하지 못하고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22대 들어서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은 주차장 전기차 충전기 화재에 대응하기 위해 전기차 충전시설을 설치하는 경우 소방시설도 함께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의 ‘주차장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더불어민주당도 전기차 화재 예방 및 대응을 위한 소방시설 설치, 주차장 안전기준에 관한 규정 마련, 전기차 충전시설 및 지정 주차 구역 지상 설치 유도, 지상 주차장이 없는 신축아파트에 대해서는 소방차의 진입이 용이하도록 관련 법 개정 등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그야말로 고질적인 ‘뒷북 입법’의 반복이다.

그러는 사이 경기 부천시 원미구 중동 지상 9층짜리 호텔에서 투숙객 7명이 숨지고, 12명이 중경상을 입는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이날 불은 810호에서 시작됐고, 화재 신고 접수 4분 만에 소방대원들이 도착했으나 이미 호텔 내부에는 유독가스로 가득 차 인명피해를 키웠다.

또, 40대 남·녀 투숙객 2명이 소방서가 설치한 에어매트 위로 뛰어내렸지만 에어매트가 뒤집힌 상태로, 이들 모두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다.

지난 2003년에 준공된 이 호텔은 당시 관련 법상 스프링클러 의무 설치 대상에서 제외됨에 따라 64개 객실 모두에 기초 진화 설비인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호텔이 준공될 당시에는 스프링클러가 소방법·건축법 등 관련 법상 의무 설치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번 화재 건물과 같이 오래전 준공된 숙박업소에는 대부분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지 않아 유사 사고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

‘스프링클러’는 화재에 대한 통보(通報)와 소화(消火)가 발화(發火) 초기에 동시에 행해지는 자동 소화설비로, 물을 분무상(噴霧狀)으로 발화점 전체에 방사시키기 때문에 초기 대응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번 화재가 호텔에 스프링클러가 없어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이 일고 있는 가운데 공동주택에 설치된 스프링클러가 실제 화제 시 작동한 경우가 15%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방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아파트와 기숙사, 빌라 등 공동주택에서 발생한 화재 2만3401건 중 스프링클러가 정상 작동한 경우는 3656건(15.6%)에 불과했다.

지난 2017년 소방시설법이 개정됨에 따라 2018년부터 6층 이상의 모든 신축 건물에는 스프링클러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만 하지만 ‘유명무실(有名無實)’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또, 지난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숙박시설에서 발생한 화재는 총 1843건으로, 매년 350건 이상이 발생하고 있으나 스프링클러 등 소방 안전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화재 위험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최근 발생한 각종 화재는 재난 환경 변화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발생한 인재(人災)다. 유사 사고가 거듭되고 있지만 그동안의 사고에서 교훈(敎訓)을 얻지 못하고 있다.

여야 정치권은 대형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소모적이고 구태의연한 정쟁의 모습만 보여왔다. 국민 안전에는 여야가 없어야 한다. ‘사후약방문’ 법안은 국민의 안전을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전국매일신문] 최승필 지방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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