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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는 詩 84] “둥근 것은 둥근 것을 안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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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는 詩 84] “둥근 것은 둥근 것을 안지 못한다”
  • 서길원 大記者
  • 승인 2024.08.19 11: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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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지 시인(1942년생)
경남 통영 출신으로 1989년 ‘월간문학’을 통해 등단. 늦은 나이에 등단,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시 쓰기를 계속하고 있음.

<함께 읽기> 문득 몇 년 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영미! 영미!” 하는 소리가 귀를 쩡쩡하게 울리던 컬링경기가 생각난다. 그때 둥근 돌(스톤)이 상대를 밀어내고, 먼저가 있던 우리돌을 상대가 밀어내는 경기를 보며 손에 땀을 쥐었을 게다.

둥근 돌이 둥근 돌을 밀어내는 그 묘한 이치(?)를 생각하며 이 시를 짓지는 않았을 게다. 그보다 훨씬 전에 발표된 시이니까. 둥근 구슬이 자리 잡고 있는 곳에 또 다른 둥근 구슬이 다가가면 그를 밀어낸다. 그를 껴안지 못하고 퉁겨 낸다. 희한하게도 둥근 것은 둥근 것을 밀어낸다. 서로는 안아주려 하나 밀어내는 이 역설, 안으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더 밀쳐 낸다.

사랑이 정반대의 결과로 나타나는 이 역설, 그래서 서로를 아끼려는 마음 대신 상대를 아프게 하여 상처를 주고 만다. “둥근 것은 둥근 것을 안지 못한다”
둥근 것은 대체로 긍정적 이미지를 가진다. 성격이 '원만(圓滿)하다', 즉 둥글둥글하다고 하면 그는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반대로 쓰이는 ‘모가 난 사람’과 비교해 보면 잘 드러난다. 둥근은 또 ‘둥근 해’에서 보다시피 밝음의 이미지를 갖는다.

하지만 이 시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동글동글 맨질맨질 전신이 정점인 / 저 잘난 구슬 탓이다” 꼭짓점이 삼각형은 세 개, 사각형은 네 개밖에 없다. 그러나 둥근 원은 꼭짓점(정점)이 무한정이다. 그걸 뻐기는 듯한 원을 시인은 슬쩍 비꼰다.

“민다고 쪼르르 달려와서 / 저와 똑 같은 것을 쳐서야 되겠느냐” 부부도 성격이 비슷하면 늘 싸운다고 한다. 서로를 위해준다고 하면서 상처를 주고. 내가 한마디 하면 저가 받아치며 한마디 꼭 하고... 둥글둥글 서로 어울려 놀자고 밀었는데, 치자고 밀었겠는가? 떼내려고 퉁겼겠는가? 사랑해서 였겠지만 서로에게 아픔을 주고 마는 둥근 구슬들이다.

“둥근 것은 둥근 것을 안지 못한다” 그렇다 너와 내가 맞닿으려면, 즉 끌어안으려면 굴곡이 있어야 한다. 굴곡이 있어야 맞닿을 수 있는데 굴곡이 사라졌으니 도저히 맞닿을 수 없다. 한 번 안아보기가 그리도 힘들고, 한 번 손 내밀기가 더욱 힘들고, 한 번 용서하기가 더더욱 힘든 작금 정치 판, 정치인들도 서로가 둥글기 때문인가?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大記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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