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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열의 窓] 달팽이도 산을 넘는다. 내 친구 홍경석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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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열의 窓] 달팽이도 산을 넘는다. 내 친구 홍경석 이야기
  • 전국매일신문
  • 승인 2024.08.25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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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열 국제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

내 친구는 65년 살아오면서 단 한 번 엄마(어머니)라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애초부터 어머니 얼굴을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 그의 어머니는 아버지의 상습적 주폭에 넌더리를 내고 친구가 핏덩이였을 때 집을 나갔다. 그리곤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 바람에 그가 겪은 고난은 장강(長江)보다 길고 깊다. 

가난이 극심해 초등학교만 겨우 졸업하고 소년가장이 되었다. 초등학교 내내 줄곧 1등만 한 친구다. 그러나 가정을 책임질 수 없었던 술주정뱅이 아버지의 봉양과 생계를 위해 어릴 적부터 역전으로 나가 돈을 벌어야만 했다. 학업 대신 직업전선으로 뛰어들어 구두닦이, 신문팔이, 행상 등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인천 제물포 철공장에서는 10대 소년공으로도 일했다. 펄펄 끓는 쇳물을 식힌 뒤 롤러로 밀어 얇게 펴서 냄비 등을 만드는 일이었다.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비극이 발생하는 위험한 작업장이다. 당시 1개월도 안 된 사이 무려 세 명이나 순식간에 팔이 잘리는 사고가 있었다고 한다. 두려운 공포감에 철공장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지만 변한 건 없었다. 밖에서 힘든 일을 하고 집에 들어서면 부모님의 아들 사랑 온기조차 없는 캄캄한 냉방이 그를 맞이했다. 집은 항상 비어 있었고 술을 마시러 밖으로 나간 아버지가 엎지른 지독한 소주 냄새만 풍겼다. 부모 잘 만난 덕분에 교복을 입고 등·하교하는 또래의 학생들을 보면 마치 죄라도 지은 양 고개를 땅에 묻었다. 세상살이가 너무 혹독해 청소년기 때는 행복한 사람들에 대한 알 수 없는 적개심과 반감을 품으며 갈등했다. 소년 시절 부랑자 무리에게 맞지 않으려고, 응징의 수단으로 권투를 배웠다. 그러나 이는 빗나가 잠시 사회적 반항과 일탈행위의 도구로 사용되었다.

1985년. 그의 아버지는 향년 오십도 못 채우고 세상을 떠나셨다. 내 친구에겐 무모(無母), 빈곤(貧困), 불학(不學)이라는 세 가지 부채만을 남기고 가셨다. 그는 그런 아버지를 버리지 않고 비록 저승에 계시지만 지극정성으로 제사를 모시고 있다. 65년이 넘도록 어머니는 증오의 대상이었지만 이제는 마음을 고쳐먹고 오히려 감사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다. 사찰에 갈 적마다 어머니의 극락왕생(極樂往生)을 소원한다. 

이렇게 잡초처럼 살았던 내 친구를 일으킨 사람은 그의 ‘천사표’ 아내였다. 결혼할 때까지 그를 사랑하는 이는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중매하는 이도 없었다. 아내는 모든 부분에서 부족한 남편을 보듬고 아껴줬다. 친구는 순한 양으로 변해갔다. 아내는 아들에 이어 딸을 안겨주었다. 친구는 이때부터 힘은 들지만, 돈을 많이 주는 공사판으로 뛰어들었다. 여름엔 땡볕에서, 겨울엔 바람막이 없는 추운 공사판에서 쉬는 날 없이 일했다. 어린 시절 너무 곯아 체력이 약해졌다. 하루 일을 마치고 나면 온몸이 으스러져 왔다. 50대 들어 건물 경비원으로 직업 전환을 했다. 2021년 9년간의 경비원 생활을 마치고 퇴직했다. 다시금 빈곤의 터널에 갇히게 되었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취업이 어려웠다. 일자리를 수소문하던 끝에 공공근로에 겨우 참여하고 있다.

자신은 모질게 가난해 못 배웠지만, 아이들만큼은 잘 가르쳐야겠다는 마음이 친구에겐 더 간절했다. 하지만 돈이 없어 아이들에게 그 흔한 과외 한 번 못 시켰다. 그래도 자식들은 부모의 속내를 알고 자강불식(自強不息)으로 열심히 공부해 주었다. 그 결과, 아들과 딸은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아들은 기업에서, 딸은 병원에서 일하고 있다. 효녀, 효자로 성장하고 이제는 결혼해 듬직한 손자 손녀까지 안겨준 보배다. 고작 초졸 학력의 경비원 아버지가 국내 최고 대학 출신의 두 자녀를 뒀다는 얘기가 돌면서 주변에 화제가 되었다.

그것이 책을 내기 시작한 동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는 경비원으로 일하며 쉬는 날엔 부지런히 도서관을 오가며 책을 읽었다. 무려 만 권의 책을 독파했다. 또 국어, 한자, 영어를 익히며 칼럼을 써왔다. 문학 관련 공모전에서 100여 차례 이상 수상했고 소설가로도 등단했다. ‘홍키호테’라는 닉네임을 가진 작가 홍경석이 오늘 내가 말한 내 친구다.

홍 작가는 2015년≪경비원 홍키호테≫ 출간을 시작으로 2019년≪사자성어를 알면 성공이 보인다≫, 2020년≪사자성어는 인생 플랫폼≫, 2021년≪초경서반(초졸 경비원 아버지와 서울대 출신 자녀의 반란)≫, 2023년 ≪두 번은 아파봐야 인생이다≫와 ≪평행선≫, 2024년≪가요를 보면 인생을 안다≫등 7권의 책을 냈다.

내 친구는 현재 여러 기관과 지자체, 언론사 등지에서 칼럼니스트, 시민기자로 활약하고 있다. ‘N뉴스통신’ 편집국장과 ‘월간 청풍’ 편집위원을 맡고 있으며 한국저널리스트대학교육원의 시민교수로 강연과 집필도 병행하고 있다. 죽도록 처참했지만, 당당하게 살아 ‘달팽이도 산을 넘는다’는 신화를 창조한 위대한 내 친구에게 뜨거운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전국매일신문 칼럼] 문제열 국제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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