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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席] 세우습의(細雨濕衣)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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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席] 세우습의(細雨濕衣)망각
  • 최재혁 지방부국장
  • 승인 2022.05.12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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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 지방부국장

최근  ‘가스라이팅’이라는 단어가 뉴스나 방송에 많이 등장했다. 가스라이팅은 1938년 영국 '가스등-Gas light'이란 연극에서 비롯된 정신적 학대를 일컫는 심리학으로 ‘가스라이팅(Gaslighting)’이란 용어가 있다. 패트릭 해밀턴 원작의 연극에 기초해 1944년 미국에서 상영된 영화 ‘가스등’에서 유래한 가스라이팅은 ‘심리적 지배’ 또는 ‘정신적 학대’를 의미한다. 이 영화에서 아내의 재산을 노린 남편은 가스등을 희미하게 켜놓고 아내가 어둡다고 할 때마다 아내에게 문제가 있는 것처럼 온갖 핀잔을 준다. 결국 아내는 자신이 문제가 있다고 믿게 되고 남편을 의지하게 된다. 남편은 온갖 속임수와 거짓말로 멀쩡한 아내를 정신병자로 만든다.

최근 ‘계곡 살인’ 사건 피의자들이 구속되면서 가스라이팅 용어가 폭발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 검찰은 “피의자들은 피해자의 일상생활을 철저히 통제하며 피해자를 극심한 생활고에 빠뜨려 가족·친구들로부터 고립시킴으로써 피해자가 피의자의 요구를 거부하거나 저항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고 밝혔다. 가스라이팅은 다른 물리적 폭력 등이 동반되지 않으면 그 자체만으로 범죄가 성립되지는 않기 때문에 ‘직접 살인’을 놓고 치열한 법적 다툼을 예고하고 있다.

고전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은 기억이 날 수도 있겠다. 부잣집 상속녀인 폴라(잉그리드 버그만)를 그녀의 남편(찰스 보이어)이 교묘하게 조정해 재산을 가로채려고 하는 내용으로, 남편이 아내를 억압하고 자신에게 전적으로 존하도록 만들기 위해서 집 안의 가스등(Gaslight)을 억압의 도구로 이용하는데, 바로 여기에서 나온 용어이다.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세우습의(細雨濕衣-가랑비에 옷이 젖는다)를 철저하게 망각하기 때문이다. 자칫 맞아 죽을지 모르면서도 가해자는 때리고 피해자는 맞는다는 말이다.

가스라이팅은 대개 가정, 학교, 직장, 연인 등 주로 밀접하거나 친밀한 관계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생면부지의 남의 말을 신뢰하고 의존하게 되지는 않을 것이므로,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권력으로 누군가를 통제하고 억압하려 할 때 사용되는 방법이기에 보통 수평적인 관계보다는 수직적이고 비대칭적인 관계에서 주로 이뤄지게 된다.

우리는 나도 모르게 상대를 심리적으로 압박하는 본성을 항상 갖고 있다. 그와 동시에 심리적 압박을 거부하고 싶은 본성도 강하게 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간섭을 받기 시작하고, 죽을 때까지 남에게 간섭을 하고 산다. 우리는 간섭이 너무 싫었지만 어느 정도 우위를 갖게 되면 간섭을 하게 된다. 이런 이율배반적 행동은, 모든 것을 나를 기준으로 한 판단에서 비롯된다. 욕심도 여기에 해당된다.

어른들은 혹여 자녀들이 실수를 하거나 잘못을 할 경우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통해 배워간다), “거봐라. 네가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있느냐”고 다그치며 “엄마 아빠 말을 안 들어서 그렇게 됐다”고 한다.비단 가정 내에서 뿐만 아니라 연인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나 아니면 누가 너를 만나겠느냐, 우리가 싸우는 건 네가 너무 예민해서 그런 거라며 수시로 윽박지르고, 이게 모두 다 너를 사랑해서 그런 거라고, 너만 잘하면 우리 관계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억지로 설득을 시키고 통제한다.

혹시라도 위에서 언급한 말들을 그동안 들어본 경험이 있다면 해당 인간관계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말했다시피 가정은 아주 작은 최소 단위의 사회이다. 부모와 자식, 형제자매가 함께 공동생활을 하며 가정 밖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사회성을 배우게 된다. 함께 부딪히며 소소히 맞닥뜨리게 되는 분쟁 내지는 문제 발생 상황 속에서 타협하고 배려하며 문제해결 능력도 생기고 사회성을 체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가스라이팅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상황 속에서 자신을 의심하며 성장해 간다면 당연히 자존감이 낮아질 것이고, 안정적이지 못한 심리상태로 가정 밖의 사회에서 타인과 부대끼며 생활해 가야 한다. 예상되는 바와 같이 불안정한 사회생활로 이어지기 쉽다. 나는 왜 이 모양일까, 내가 하는 일이 그렇지 뭐, 이런 나를 누가 인정해 주겠어, 등의 자기 비하적 생각은 어떤 상황에서도 건강하지 않을 뿐더러 바람직하지도 않다.

바람직하고 건전한 사회성을 키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나를 사랑하는 마음가짐이 우선이다. 자신의 소중함을 늘 간직하고 되새기며 이를 기반으로 상대를 존중할 줄도 알아야한다. 나의 말 한 마디가 사랑하는 가족, 친구, 동료들에게 얼마나 큰 의미일 수 있는지, 상처를 줄 수도 있고 큰 힘이 될 수도 있다는 것도 알아야겠다. 같은 말이라도 상대에게 힘이 되는 말을 하며 살도록 노력해야 한다. 오늘 누군가에게 어떤 말을 쏟아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며 살자.

‘너무 좋아해서’, ‘너무 아끼고 싶어서’, ‘잘 되기를 바라서’ 등의 이유로 베푸는 것을 호의적 관심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관심이 심해지면 간섭이 되고, 간섭이 해지면 심리적 학대가 된다. ‘내가 맞다’라는 일방적인 맹신 때문에 주변에 피해를 주는 가스라이터는 아닌지….

[전국매일신문] 최재혁 지방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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